Guardian 칼럼

“오늘 오후 그는 ‘보니 프린스’입니다.” 1987년 카라바오컵 결승전이 끝난 후 배리 데이비스가 남긴 이 말은 언제나 그렇듯 적절했다. 웸블리에서 펼쳐진 그 영광스럽고 화창한 일요일 오후, 찰리 니콜라스는 가장 큰 무대에서 제 몫을 해내며 아스날의 8년 만의 우승 갈증을 해소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니콜라스의 아스날 시절은 1983년 셀틱에서 이적할 당시 그를 둘러싼 기대와 열기에 미치지 못했다. 때때로 마법 같은 순간들이 있었으나(다행히도 아스날 팬들에게는 그가 종종 토트넘을 상대로 최고의 기량을 발휘했다), 그의 활약은 테리 닐과 돈 하우 감독 체제 시절 팀만큼이나 들쑥날쑥했다.
조지 그레이엄은 1986년 여름에 지휘봉을 잡았고, 니콜라스의 아스날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레이엄의 활기차고 근면한 스타일에 거의 맞지 않았던 니콜라스는 결국 1988년 1월 애버딘FC로 이적했다. 하지만 그는 떠나기 전 아스날 팬들에게 완벽한 이별 선물을 안겨주었다.
토트넘과의 준결승 2차전 중반만 해도, 아스날이 7년 만에 웸블리 결승에 진출할 가능성은 요원한 꿈처럼 보였다. 당일 1-0, 합계 2-0으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심지어 스퍼스 구장 아나운서조차 아스날이 이미 탈락했다고 생각했는지, 토트넘 팬들이 웸블리 티켓을 구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전하기도 했다.
아스날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 즉각 반응했다. 그들은 후반전에 두 골을 터뜨려 재경기를 이끌어냈다. 3일 후, 그들은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다시 한 번 뒤지던 상황을 뒤집고 2-1의 기억에 남을 승리를 거뒀다. 그레이엄 감독의 젊은 선수들은 결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승전에서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나게 될 터였다. 웸블리 결승전의 풍부한 경험 덕분에 리버풀이 우승 후보로 꼽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디언의 데이비드 레이시 기자는 경기 전망 기사에서 “최근 몇 년간 그곳을 너무 자주 찾아다녀서, 그 경기장은 사실상 그들의 제2의 고향이 되었다”고 썼다. 리버풀 선발 명단 중 게리 길레스피만이 유일하게 그곳에서 경기를 치른 적이 없는 선수였으며, 이는 10년 만에 치르는 8번째 국내 컵 대회 결승전이었다.
아스날의 리그 성적은 연초부터 주춤해 왔지만, 1987년 4월 5일 양 팀이 맞붙었을 때 낙관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리버풀은 에버턴과의 우승 경쟁에서 흔들리고 있었으며, 결승전을 앞두고 지난 두 차례 리그 경기에서 연패를 당했다. 게다가 마크 로렌슨, 짐 베글린, 스티브 니콜이 시즌 잔여 기간 동안 결장하게 되면서 리버풀 전력의 핵심이 빠져버린 상태였다.
칼럼에서는 특히 토니 아담스의 말이 다시 소환된 대목이 눈에 띈다. 토니 아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스날은 그 지긋지긋한 기록을 떨쳐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그것은 전형적인 웸블리 결승전의 모습이었다. BBC 생중계, 오후 3시 킥오프, 지미 힐의 진행과 해설자로 나선 바비 찰튼, 트레버 브루킹, '트윈 타워', 행진 밴드, 그리고 터널에서 미드필드 라인까지 이어지는 그 긴 행진. 정말 환상적이었다.
리버풀은 경기 초반부터 기세를 몰아 경기를 주도했다. 이안 러시가 슈팅을 빗나가게 날렸고, 크레이그 존스턴은 존 루키치 골키퍼의 선방을 이끌어냈다. 이어 아스날 주장 케니 산섬의 실수 이후, 얀 몰비가 페널티 박스 가장자리에서 슛을 날렸으나 공은 골대 위로 빗나갔다. 데이비스는 산섬이 긴장한 모습이었다고 언급했는데, 이 좌측 풀백이 팀 내 가장 노련한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아스날 팬들에게는 우려스러운 상황이었다.
“아스날은 그 지긋지긋한 기록을 머릿속에서 떨쳐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데이비스는 집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던 사실을 언급하며 덧붙였다. 바로 러시가 득점한 144경기에서 리버풀이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준결승에서의 역전극은 아스날 선수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상한 점은, 비록 갑작스러운 일격에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우리가 이 경기에서 이길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라고 토니 아담스는 『Addicted』에서 썼다. 러시가 선제골을 넣은 후 무너지는 대신, 아스날은 정신을 차리고 리버풀을 상대로 주도권을 잡았다.
레이시는 경기 기사에서 “아스날의 젊은 선수들이 한 단계 성장했다”고 썼으나, 대부분의 신문 보도는 니콜라스와 그의 재계약 의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레이엄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논의에는 얽히지 않은 채, 창단 100주년 시즌에 아스날에 트로피를 안겨준 것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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